[비평]이행균 작품비평
이행균 작품비평
최정선 미술사학자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 자연처럼 믿는 이들은 모두에게 수호천사가 있다고들 말한다. 작가 이행균이 종교에 입문하면서 동행을 시작한 이는 대천사 라파엘이다. 성서 속에서 토비아와 먼 길 여행을 함께했고, 그를 지켜주고 안내마혀 치유의 메신저가 되었던 라파엘, 이 전시는 대천사 라파엘과 이행균이 일상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작가들이 좀처럼 하지 않는 조각 퍼포먼스는 자신과 감상자를 세속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정화시키는 행위이다. 그의 수고스러움이 고스란히 배인 작품들을 신에게 봉헌하는 일종의 의식인 것이다. 일찍이 조각을 위해 돌 공장, 주물 공장에서 노동의 품도 아끼지 않았던 작가 이행균에게 작업실은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신성한 노동의 현장이며 성실하게 일과를 시작하고 마치는 삶의 터전이었다. 그는 거친 돌을 깍고 다듬을 때 하느님이 주신 자연에 정 맛을 더하면서 인간과 예술의 만남을 제안한다. 서로 다른 결과 색을 지닌 돌과 돌, 부드러운 대리석과 차가운 브론즈가 만나는 것이다. 작품에서 이질적인 재료들의 만남이 낯설지 않은 것은 그의 기술적인 능력과 노고의 산물이겠지만 이것은 작가의 심성으로 다음어지고 마음결이 자아낸 흔적이기도 한다. 그는 사람의 마음결에 선함을 더하고자 그의 작업 세계에 가족과 종료를 하나로 엮어낸다. 그리하여 자신의 돌이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을 선물하고 쉽고 편하고 부드럽게 만날 수 있는 대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바로 이 전시는 그가 선택한 믿음 안에서 소망하고 이루고 싶은 사랑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믿음
가시관을 쓰고 고통스러워하는 예수는 모든 시름을 놓고 몸을 뉘었다. 가톨릭과의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가는 우리에게 십자가에 재현된 예수 형상만으로 부활을 꿈꾸게 하지 않는다. 예수의 형상 아래 감도는 빛을 통해 죽음의 그림자를 생명 에너지로 변환시키고 있다. 비로소 우리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 인성과 신성을 지닌 예수의 본질을 목도하는 것이다. 진정 마음으로 바라면 손은 간절함을 낳는다. 살결이 묻어있는 부부의 기도하는 손은 간절함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행균은 그 간절함을 작품<성 가정>에서 돌에 하나하나 새긴 정 자국과 시간으로 완성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을 <골고다의 길>로 이어간다. 작가는 단호하게 목숨 값을 치르면서도 지켜낸 순교정신을 고요하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지닌 인물들고 표현해 놓았다. 성인의 손은 하늘빛으로부터 연유한 이 모든 사실들을 조용히 우리들이게 일러준다.
소망
라파엘. 이행균의 세레명이다. 가톨릭으로 새로 태어난 작가는 천사를 소망한다. 그는 시간을 들여 돌을 깎아 아들의 장난감 말을 만들어준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그 수고를 모르면서 대천사의 소명을 이루고자 고민하는 아기천사이기도 하다. 때로 이 천사는 세월의 갈피가 놓은 좌대 위에 턱을 괴고, 쿠션처럼 푹신한 대리석 돌 위에서 소망을 꿈꾼다. 또한 작가의 종교적 자화상이 된 천사만큼이나 그에게 여성은 예술적 감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랑스런 존재이다. 은은한 오로로 핑크 옷을 입은 소녀와 여인은 서로 다른 돌의 질감과 색을 효과적으로 살려냄으로써 어울림의 미학을 담아냈다. 그리고 연풍(軟風)에 흔들리는 머릿결을 지닌 여성응 아르누보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절로 서정적인 연가(戀歌)를 부르게 만드는 그의 오랜 연인이 되었다.
사랑
순결한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전하는 복된 소식에 그대로 응답하였다. 마치 벌이 꽃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녀는 날 때부터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어머니가 되었다. 한곳을 바라보거나 서로를 응시하며 눈빛과 마음을 나누는 모자, 연인들, 그리고 가족의 사랑은 구태여 장황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행균의 작품에서 사족 없는 담백한 사랑을 본다. 그것은 그의 조각이 추구하는 간결한 선과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며 돌의 본질에 충실하려는 조형적인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돌과 사랑에 빠진 작가 이행균의 작업이 마침내 종교적 감성으로 다시 태어난 첫 전시이다. 함께 갈 수는 있어도 대신 갈 수 없는 돌과의 동행에서 작가는 하느님의 숨결이 온기로 남은 작품들을 우리에게 선사한다.